오늘 아침, 어항 속 샌드불가사리 한 마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힘없이 바닥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허전해지더군요.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해수어항을 운영하다 보면 생물들의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눈앞에서 마주할 때마다 쉽게 적응되지는 않습니다.
🌊 떠나간 친구들의 기억
샌드불가사리 이전에도 제 어항을 떠난 생물들은 적지 않았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옐로우레스입니다. 노란색 몸으로 어항 한쪽을 환하게 밝혀주던 녀석이었죠. 아침이면 불쑥 나와 유영하다가 저녁에는 모래 속으로 들어가 숨는 모습이 참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수면을 박차고 점프해버렸습니다. 작은 틈으로 빠져나가 바닥에 굳어 있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어요. 그때 저는 뚜껑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산호들도 저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버블산호는 빛이 켜지면 방울이 부풀어 오르고, 불이 꺼지면 촉수가 나오는 그 신비로운 매력 때문에 들였던 아이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가운데가 녹아내리며 뼈대가 드러났습니다. 결국 풍선처럼 보이던 방울은 모두 사라지고, 앙상한 뼈만 남았죠. 핑거레더 산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부풀었다가 움츠렸다가를 반복하다가 갑자기 사방으로 녹아내리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원인을 명확히 알 수 없다는 게 더 답답했지만, 결국은 제 수질 관리가 부족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묵묵히 유리벽을 청소해주던 보말도 떠났습니다. 있을 때는 존재감이 크지 않았는데, 죽고 나니 그 빈자리가 크게 다가왔습니다. 유리벽에 이끼가 금세 끼는 걸 보며 "아, 저 작은 아이들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새삼 깨달았죠. 말미잘은 더 안타까웠습니다. 밥을 잘 먹지 못해 굶어 죽기도 했고, 다른 개체는 출수구에 끼어 내장이 드러나며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우리 집 어항에서는 말미잘을 더 이상 들이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무리 매력적이고 예뻐도 환경이 맞지 않으면 결국 함께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했으니까요.
이렇게 돌아보니 참 많은 친구들을 떠나보냈습니다. 옐로우레스, 버블산호, 핑거레더 산호, 보말, 말미잘… 이름만 나열해도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죽음을 통해 배운 것도 많았습니다.
💡 남은 아이들과 배운 교훈
죽음의 이야기를 적다 보니 지나치게 무거워질 수도 있겠지만, 다행히도 아직도 제 어항에는 건강하게 살아가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바로 두 마리의 클라운피쉬, 흔히 니모라고 부르는 아이들이죠. 이 녀석들은 먹이도 잘 먹고, 하루하루 자기들만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어항을 들여다보다 보면, ‘그래도 내가 잘하고 있구나’ 하는 작은 안도감을 줍니다.
해수어항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습니다. 작은 생태계를 책임지고, 그 안의 생명을 돌보는 일이었죠. 죽음을 마주하면서 슬픔도 느꼈지만, 동시에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환수 주기를 조정하거나, 먹이 급여 방법을 바꿔보기도 하고, 장비 점검을 꼼꼼히 하려 노력하게 됩니다. 실패는 아쉽지만, 결국 그 경험이 또 다른 생물을 살리는 밑거름이 되더군요.
아빠로서 아이들과 함께 어항을 바라보는 시간도 소중했습니다. 아이들이 “저 물고기 어디 갔어?”라고 물을 때마다 생명의 소중함과 책임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어항은 단순히 집안 장식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배우고 성장하게 만드는 교과서 같은 존재였습니다.
오늘 샌드불가사리의 죽음을 기록하며 다시 한번 느낍니다. 해수어항은 늘 기쁨과 아쉬움이 공존하는 세계라는 걸요. 생물이 떠나면 허전하지만, 그 경험 속에서 교훈을 얻고, 남은 아이들을 더 잘 돌보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집안의 작은 바다 해수어항을 관리하는 아빠로서의 길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