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미국이 니콜라스 마두로를 체포해 뉴욕으로 이송했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2026년 1월 4일(현지) 미군이 카라카스에서 마두로를 확보해 미국으로 데려갔고, 뉴욕 연방법원 절차로 이어졌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마두로 체포 자체보다, “이 나라가 왜 하이퍼인플레의 상징이 됐나”가 더 궁금해졌습니다.
베네수엘라는 한때 세계 경제 4대 강국으로 남미에서 꽤 잘 사는 나라였고, 1950년대에는 미국 대비 1인당 소득이 90% 수준까지 올라갔다는 연구도 있더라고요.
핵심은 단순합니다. 돈이 들어올 때, 그 돈을 어떻게 쓸지에 대한 선택이 엇갈렸다는 점이었어요.
차베즈 벽화
한때 ‘석유 부국’이었던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는 석유가 국가 경제의 중심이었습니다. 오직 석유 생산 및 수출이 경제를 떠받치고 있었죠.
문제는 그 의존도가 너무 높았다는 겁니다.
미국 의회조사국(CRS) 자료에 따르면 석유 부문은 베네수엘라 GDP의 큰 비중을 차지했었고, 수출, 수입의 95%를 차지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에 나라에서 들어오는 돈줄이 하나 이면, 그 돈줄이 흔들릴 때 나라 전체가 같이 흔들리게 됩니다.
두 산유국의 각기 다른 선택 : 노르웨이 vs 베네수엘라
여기서 제가 중간 비교로 꼭 넣고 싶은 나라가 노르웨이였어요.
노르웨이 또한 산유국입니다. 하지만 노르웨이는 베네수엘라와 달랐어요.
노르웨이는 “오늘 다 쓰지 말고 미래를 위해 쌓아두자” 쪽으로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노르웨이는 석유 수입의 변동을 막기 위해 국부펀드(정부연기금 글로벌)를 만들었고, 석유로 벌어들인 현금을 펀드로 모아 장기 투자에 활용해 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1년부터는 재정 규칙을 두고, 펀드 원금을 마구 꺼내 쓰기보다 기대 수익 범위 안에서 지출을 조절하는 틀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반대로 베네수엘라는 (모든 복지를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석유가 잘 팔리던 시기에 미래를 위한 대비(저축·투자)보다는 당장의 인기와 정치세력 유지를위해 지출을 키우는 쪽으로 더 힘을 주었습니다.
돈이 있을 때는 더 쓰고, 돈이 줄면 더 찍어서 메우는 구조가 한 번 고착화되면 이러한 습관을 멈추기가 정말 어려워집니다.
제가 보기엔 이 비교가 단순한 도덕 이야기가 아니라, 두 산유국이 미래를 생각하는 시각의 차이를 보여주는 좋은 예시였어요.
노르웨이 또한 복지가 강하지만, 중요한 건 ‘복지가 있냐 없냐’가 아니라 ‘재원을 운영하는 명확한 규칙이 있냐’였던 거죠.
KBS 방송 화면 캡처
무너진 고리 1: 환율 및 가격 통제가 만든 왜곡
베네수엘라는 2003년부터 환율 통제와 고정환율을 유지해 왔고, CADIVI 같은 기구가 외화를 통제했다는 설명이 여러 자료에 나옵니다. 이런 통제가 길어지면 대개 비슷한 일이 생깁니다.
공식환율로 달러를 갖게 된 사람과 갖지 못하게 된 사람이 나눠지게 되고, 수입이 막혀서 물건이 부족해지고, 물건이 부족해지면 가격이 오르게 됩니다. 오르게 된 가격을 눌러보려고 중앙 정부에서 통제를 세게 하면 공급이 더 줄어드는 방향으로 가기 십상입니다.
결국 시장의 균형이 망가지면서 암시장이 커지는 형태가 되는 거죠.
무너진 고리 2: 재정적자를 통화량 증가로 메우는 순간
하이퍼인플레는 원인이 하나만은 아니지만, 결정적인 메커니즘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세금과 외화가 줄어들고 대출도 막히면, 정부는 중앙은행에 기대게 됩니다.
그리고 중앙은행이 적자를 메우기 위해 통화를 빠르게 늘리면, 화폐의 신뢰가 무너지고 물가가 폭주하게 됩니다.
베네수엘라 경제분석 칼럼에서도 “정부가 지출을 줄이기보다 중앙은행 발권으로 재정을 메우며 통화량이 월 20~30% 확대되는 구간이 있었다”는 식으로 정리합니다. (Economics Observatory)
이 시점부터는 사람들의 행동도 바뀝니다. 월급을 받으면 바로 물건으로 바꾸고, 자국 통화를 들고 있지 않으려 하고, 달러 같은 대체 수단으로 도망가려 합니다. 그 자체가 다시 물가를 밀어 올리는 악순환의 연속이 되는 거죠.
결정타: 2014년 유가 충격 + 석유 생산 붕괴
2014년 중반 이후 유가 하락은 베네수엘라에 특히 치명적이었습니다. 이미 취약 약해질 대로 취약해진 베네수엘라의 경제 상태에서 큰 충격이 들어왔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CGEP)
게다가 생산 기반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로이터는 베네수엘라가 세계 최대 수준의 원유 매장량(약 3,030억 배럴)을 보유했지만, 오랜 기간의 시설 관리 부실, 투자 부족, 경제 제재 속에서 생산이 1970년대 약 350만 bpd 수준에서 최근 약 110만 bpd 수준으로 내려왔다고 전했었습니다. (Reuters)
석유가 있다와 팔 수 있다는 다른 문제였고, 이 차이가 국민 생활을 직접 때리게 되었어요.
그렇다고 미국 제재 때문인가?
제 결론은 이겁니다. 베네수엘라의 붕괴는 제재 이전부터 석유 과의존 + 통제 강화 + 재정 규율 붕괴 + 무분별한 통화발행으로 이미 진행중에 있었습니다. 다만 미국의 제재는 외화 조달·금융 접근·석유 거래 통로를 좁히면서, 고통을 키우고 회복 경로를 더 어렵게 만든 측면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론
베네수엘라의 하이퍼인플레를 보면서 느낀 건, 이게 단순히 “물가가 오른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화폐는 결국 신뢰인데, 그 신뢰가 무너지면 국민의 하루가 통째로 흔들립니다.
월급을 받아도 물건을 살 수가 없어 장바구니가 비어 있고, 내일 가격표가 어떻게 바뀔지 몰라서 삶의 계획 자체가 사라지니까요.
저는 하이퍼인플레가 종종 정치의 유혹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권력을 더 오래 붙들기 위해, 혹은 당장의 표를 얻기 위해 재정의 규칙을 무너뜨리고, 무분별한 화폐 발행으로 덮어버리는 순간이요.
처음엔 좋은 의도처럼 포장되지만, 결국 그 비용은 일반 국민들의 생활비와 호주머니에서 빠져나가게 됩니다.
정치인들은 인기와 권력은 얻을 수 있지만, 무너진 통화는 오랫동안 국민을 고통 속에 빠뜨리죠.
그래서 제가 바라는 건 단순합니다.
차베즈와 마두로처럼 자신의 알량한 권력 유지를 위해 대중의 인기를 좇고, 나라의 곳간을 무분별하게 퍼주면서도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방식을 추종하는 정치인이 세계 어디서든 다시 등장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복지든 성장 정책이든 방향은 다를 수 있지만, 최소한 화폐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정치만은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베네수엘라는 이번 사건으로 다시 재건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제도와 규칙이 정상화되고, 화폐가 다시 신뢰를 얻고, 사람들이 내일을 계획할 수 있게 되는 것.
이번 마두로 체포 뉴스가 어떤 결말로 이어지든, 그 과정의 중심에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의 삶이 있었으면 합니다.
그동안 겪었던 베네수엘라 국민들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어지는 쪽으로, 정말 그렇게 흘러가면 좋겠습니다.
마두로 체포에 환호하는 베네수엘라 사람들